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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

5편. 노인을 위한 미술치료 프로그램 체험기

by info-yoon1 202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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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초기 노인과 함께한 미술 수업 후기’

👴 고령화 사회에서의 미술치료 – 노인 대상 예술치유의 필요성

우리 사회는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긴 지금, 우리는 단순히 ‘사는 것’이 아닌, ‘어떻게 잘 살 것인가’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노년기에는 신체 기능의 저하와 더불어 인지 기능의 감퇴, 우울감, 사회적 고립감이 동시에 찾아온다. 이런 복합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해 최근 들어 **예술치유(Art-based Therapy)**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술치료는 언어적 부담이 적고, 직관적 감정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고령자에게 매우 적합하다. 노인은 일생의 감정을 차분히 되짚는 시간이 필요하고, 미술이라는 매체는 이러한 감정 회복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특히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는 노인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인지 자극과 기억 활성화를 동시에 유도할 수 있어, 예방적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 미술치료 수업 현장 – 치매 초기 노인의 변화

경기도의 한 복지관에서 진행된 고령자 미술치료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8주간 주 1회, 총 8회로 구성되며, 70세 이상 어르신 10명이 참여했다. 그중 74세 여성 C씨는 초기 치매 진단을 받은 상태였고, 단기 기억력이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건, 수업을 거듭할수록 그녀의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첫날 C씨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 수업부터는 “오늘은 연분홍색으로 해볼까?”라며 직접 색을 고르고, 다른 어르신과 그림을 비교하며 소통하기 시작했다. 네 번째 수업부터는 종이 위에 가족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고, 담당 치료사는 이를 **기억 회상 기반의 감정 치유(memory-based emotional healing)**라고 분석했다. 그림이라는 도구가 기억의 실마리를 당겨낸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 날, C씨는 자녀들의 이름을 또렷이 말하며 “다음에도 또 그리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미술이라는 비언어적 수단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되찾았고, 기억을 단편적으로나마 이어 붙일 수 있었다. 치매 초기 노인의 삶의 질 회복에 있어, 미술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도구임을 실감했다.


🧠 미술이 자극하는 인지 기능 – 과학적 메커니즘

미술치료는 단순한 감정 해소를 넘어, 두뇌 인지 영역의 활성화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시각 처리, 소근육 운동, 주의 집중, 기억 회상, 감정 조절 등 복합적인 인지 기능을 동시에 사용하게 만든다. 이는 특히 치매 예방 또는 경과 지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고령자의 경우 전두엽 기능 저하로 인해 의사 결정 능력이나 계획 수립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 미술 활동을 통해 색을 고르고, 형태를 결정하고, 자신만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과정은 이 전두엽을 자극하는 효과를 준다. 실제로 국내 여러 요양병원에서 진행된 미술치료 연구에서, 일정 기간 이상의 프로그램 참여가 단기 기억력 및 언어 유창성 점수 향상으로 이어졌다는 결과도 있다.

또한 그림을 그리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작업은 **자서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을 자극하여 정서적 안정과 더불어 인지 기능 유지에도 큰 역할을 한다. 이는 단순한 미술 활동이 아니라, 기억을 기반으로 한 정서 재건축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 미술치료의 확장 가능성과 사회적 의미

노인을 위한 미술치료 프로그램 체험기

 

노인을 위한 미술치료는 단지 개인 치유를 넘어,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복원의 힘을 가진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노인들에게 집단 미술치료는 사회적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고, 감정을 나누는 경험은 고립감을 완화시킨다. 실제로 많은 노인들이 "이 수업을 기다린다"고 말하며, 수업이 끝난 후에도 자발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현재 서울시, 부산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고령자를 위한 문화예술 복지 프로그램으로 미술치료를 정식 도입하고 있으며, 요양병원과 복지관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국적으로 체계화되지는 않았다.
이제는 미술치료를 단순한 취미활동이나 부가 프로그램으로 보지 않고, 공공보건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정서적 안정, 인지 기능 자극, 사회적 교류. 이 세 가지 축이 노인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면, 미술치료는 그 세 가지를 모두 아우르는 유일한 접근 방식이 될 수 있다.

 

👵 미술이 건네는 손 – 정서 회복과 기억 회복의 통로

노인 대상 미술치료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활동이 아니다.
그림을 통해 오랜 시간 안에 묻혀 있던 감정, 기억, 자아를 깨우는 과정이다.
특히 치매 초기나 경도 인지장애 어르신의 경우,
손을 움직이고 색을 고르며 뇌의 여러 부위가 활성화되고,
자기표현의 의욕도 함께 살아난다.

실제로 ‘나의 추억 장소 그리기’ 프로그램에서는
평소 말수가 거의 없던 한 어르신이
“이건 우리 마을 우물인데, 여기에 꽃무늬 대야가 있었지…”라고
20년 넘게 꺼내지 않던 기억을 꺼내놓았다.
그 순간은 단순한 회상 이상이었다.
그림이 열쇠가 되어, 정서적 연결과 인지적 자극이 동시에 일어난 것이다.


✍️ 프로그램 진행 시 유의사항과 팁

  • 주제는 단순하게, 감정은 깊게
    예) “내가 좋아했던 색은?” / “어릴 적 냄새가 나는 풍경”
    → 너무 추상적이거나 치료 중심의 단어보단,
    정서 친화적인 질문이 효과적
  • 작품을 완성하는 데 집중하기보단, 표현하는 과정 자체를 존중
    → 손 떨림, 집중력 저하로 그림이 어긋나더라도
    “이 선이 아주 따뜻하네요” 등 정서적 피드백이 핵심
  • 추억을 자극하는 소품 활용
    (옛 사진, 노래, 향기 등)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방식도
    기억 회상과 감정 표현을 자연스럽게 유도함

💬 실제 반응과 변화 사례

✔ “나는 이제 늙어서 그리는 것도 귀찮아…” 하던 어르신이
‘손끝 꽃잎 만들기’ 활동을 한 뒤
“내가 이런 색을 좋아했는 줄 몰랐네” 하며
다음 주 활동을 먼저 물어본 사례도 있다.

✔ ‘색종이 조각 붙이기’로 감정 표현을 시도한 70대 여성 어르신은
“속은 시커멓고, 겉은 웃는 색이야”라며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시각화했고,
이후 상담에서 의사 표현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 80대 할아버지는
“나는 그림은 모른다”고 하셨지만,
‘내 손으로 만든 가족 나무’ 활동 후
그림을 조용히 접어 지갑에 넣으셨다.
그림은 기억이자 마음이고,
말보다 강한 자기 존재의 기록
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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